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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공간/창작 노트 창작에 대한 짧은 노트

by 서울나기 2019. 12. 26.

9살 때부터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저는 글쓰기에 대한 재주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경험한 과정은 영감과 즉흥에 의한 것이었기에 창작이라는 건 재능과 영감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죠. 대가들은 - 재능 있는 사람들을 다 그렇듯 어느 날 갑자기 뮤즈가 내려와 귀속에 멜로디를 속삭여 주면 저절로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건 저의 능력이 생각만큼 탁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창작은 멀어졌고 결국 한 줄도 쓸 수 없을 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학교 과목 중에 작문 시간이 있었지만 오히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가게 될 뿐이었죠. 점점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릴 적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쓰였던 단편은 단지 초심자의 행운일 뿐이었을까요? 아니면 애초부터 저에게 그런 재능은 없었던 것일까요.

 

소설가들은 글을 쓰지 않으면 힘들다는데, 나는 글을 쓰지 않아도 살고 있으니 예술가가 되기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창작을 신의 영역에 감춰둘 것인가? 그것은 핑계 아닐까? 창작에 대한 인간의 법칙이 분명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때부터 창작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론서부터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 창작 노트, 예술 잡지, 전문서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작가의 연대표, 문학사, 용어 사전 같은 학문적인 것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지하실로 내려가 타자기 앞에 앉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습관까지. 수많은 말과 글 사이에서 창작에 대한 비밀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볼 틈이 없었습니다.
"영감에 의해 써졌나요? 습관에 의해 써졌나요?" 같은 것이 궁금했으니까요.

 

창작은 무엇일까? 창작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또는 나는 천재일까 아닐까?) 그동안 제가 탐험했던 창작에 대한 모든 것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 이것은 분명 제가 돌아왔던 것만큼, 긴 여행은 아닐 겁니다.

 

 

거절 쪽지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지름길은 없다.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이미지는 천재적인 소설가. 다작하는 창작가로 다가왔습니다. 출판사에 찾아가 초고를 들고 흔들어도 바로 책을 찍어 낼 것 같지만 지름길은 없다고 하니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씬 시티>를 만든 로버트 로드리게츠는 영화 제작은 10분만 가르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적은 돈으로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매번 영화 DVD에 부가 영상으로 <10분짜리 영화 교실>을 넣어 영화 제작은 쉽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곤 합니다. 로드리게츠 감독이 이 영화 교실에서 했던 이야기 중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Art & Fear>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해 줬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도자기 학교에서 A반과 B반을 나눠서 도자기 수업을 했다. A반은 학기 내에 완벽한 도자기 하나를 완성하면 A+를 주고, B반은 학기 내에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100개를 만들면 A+를 주는 평가였다. 약간의 모험심도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평가를 해보자, 완벽한 도자기는 B반에서 나왔다. - <Art & Fear>

A반 사람들은 완벽한 도자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괜찮은 도자기조차 만들 수 없었고, B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 보니 결국 완벽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이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했을 것이라고 신화적인 요소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그 결과를 낸 것은 B반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재미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말콤 글레드웰의 역작 <아웃라이어>에서도 역시나 같은 주장이 나옵니다. 말콤 글레드웰은 어떤 일에 만 시간을 쏟아부으면 뇌가 충분히 세팅되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한데 모아 A급 연주자 팀과 B급 연주자 팀 그리고 아마추어 팀을 나눠 놓고 단지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연습을 했는지 만을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급 연주자는 10000시간 이상, B급 연주자는 8000시간 미만, 아마추어 연주자는 1000시간 미만이었다. A급 연주자 중 만 시간 연습량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 <아웃 라이너>

모차르트 일화를 들여다봅시다. 4살 때 작곡을 시작했던 모차르트는 2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괜찮은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가 20살 때 정말 괜찮을 곡을 썼다는 것이 아니라 작곡을 시작한 지 16년이 지났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곡은 30살이 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작곡을 시작한 지 20년이 흐른 후였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소설을 써오던 스티븐 킹은 원고를 삼류 SF 잡지에 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고를 퇴짜 맞을 땐 편집자가 투고 작가에게 '거절 쪽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린 스티븐 킹은 거절 쪽지를 처리하기 위해 벽에 못을 박아 꽃아 둡니다. 후일 그는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회상합니다. '거절 쪽지가 너무 많아서 못이 뽑혀 땅에 떨어질 정도였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븐 킹도 한때는 글이 형편없을 때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못이 뽑혀 나갈 정도로 많은 양의 단편을 썼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킹은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컨테이너 박스에서 그의 첫 번째 성공작 '캐리'를 썼습니다. 그가 30대로 접어들 무렵이었죠. 천재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편견입니다. 재능보다 뛰어난 노력 했기에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죠.

 

성장

우리는 '창작'을 하는 예술 분야에서는 재능이 전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재능에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는 결과를 우선시하는 풍토 때문일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소설가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만들었는지 관심 없고, 관심이 있다고 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과정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관심사가 아닙니다.

반대로 당신이 창작가라면 과정에 더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 작품들은 우리들의 머릿속, 어딘가 처박아둔 메모처럼 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0년 동안 그렸던 <모나리자>는 아직도 미완성 인체로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습니다.

  • 누구나 그 분야에 어느 정도 재능이 가지고 있기에 시작한다. (재능)
  • 기술을 습득하고 노력한다. (노력)
  • 걸작을 만들거나 졸작을 만든다. (천재성)

갓 시작한 작가는 어느 정도 자신의 재능을 감지했기 때문에 일에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배우고 노력하겠죠. 여기까지는 대부분 사람이 겪은 일입니다. 하지만 걸작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말합니다.

 

스티븐 킹은 이런 천재성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풋내기가 (노력한다면) 괜찮은 작가 정돈될 수 있다. 괜찮은 작가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훌륭한 작가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괜찮은 작가가 위대한 작가 되긴 불가능하다.

앞서 우리는 모차르트도 위대한 곡을 만들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천재성이 의미하는 것은 결과론 적입니다. 모차르트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은 분명 많을 것입니다. 그가 일찍 요절했기에 더욱 그렇죠. 하지만 우리 모두 모차르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천재적인 재능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야말로 신의 주사위 놀음이죠. 스티븐 킹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천재성은 시대에 유행하는 가슴 모양을 가진 패션모델'과 같은 일입니다.

 

천재성은 노력해서 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에 관심이 있는 창작가들이기 때문이죠.

 

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빈센트 반 고흐가 인류를 위해 그 많은 문화적인 유산을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위대함은 세상의 갈대와 같은 평가일 뿐이죠.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만입니다.

 

영국에는 서머 힐이라는 오래된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교육 방향은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참여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에 들어오지 않을 권리가 있어 수업시간에 숲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은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교칙을 만드는 것도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합니다. 교장 선생님조차도 아이들과 같이 단지 1표의 의견만을 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아이들이 정하고 자신들이 정한 만큼 그 법은 최대한 지켜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8학년을 다니며 처음 6년 동안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뛰어놉니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2년 동안 8학년 동안의 공부를 빠르게 해내게 되는 것이죠. 그들이 천재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공부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아웃라이어>에 비추어 보자면 만 시간 동안 뛰어놀다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경험으로 써 배우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노력할 이유를 찾게 된다는 것이죠. 서머 힐의 학생들은 두 가지 다른 학교 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과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추억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봅시다. 누구도 우리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도 타인의 성장을 보려 하지 않죠. 우리들의 교육 시스템은 자신을 탐구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시간에 맞춰 다음 학년으로 밀어내 버리는 교육을 해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 몰라 사회 나가면 쓰지도 않을 모든 것을 배우기에 자신에게 물어볼 틈도 없이 지식을 통째로 외워버립니다. 그렇게 세상이 만들어낸 틀에 맞춰 훌륭한 학생이 되거나 낙오자가 되죠.

 

유년시절이 아름다웠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불행하죠. 결국 우리가 천재성에 끌리는 이유는 사회적 잣대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에 대한 극적인 보상을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부터 단단히 잘못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것은 우리 스스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창작은 단순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 대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삶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성장할 수 있죠.

 

모차르트가 수많은 작곡을 하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지고 더욱 많은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천재로 만들어 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좋은 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영감과 기술

뮤즈(영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또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영감은 창작 활동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때가 많지만 시간 맞춰 오진 않습니다.

 

재즈 바를 운영하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키는 마라톤 마니아였는데 글쓰기도 마라톤을 하듯 꾸준히 쓰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전에 한 번도 소설을 쓴 적이 없었지만 마라톤을 하듯 한 걸음, 한 단어씩 써내러 갔습니다. 그 꾸준함과 우직함은 동시대의 가장 사랑을 받는 작가로 오늘날의 하루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창작을 신의 마법이나 뮤즈의 재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렵겠지만 '기술'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제어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땅에 때때로 뮤즈가 찾아온다면 좋은 것이죠. 한 발짝 더 나아가 창작은 근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 = 근육>이라는 공식은 불확실성에 기반을 둔 상상의 세계를 현실에 발붙이게 하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근육을 늘리듯 창작의 근육도 하루하루 늘려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트레이닝 방식은 작가마다 다를 것입니다. 아침에 글이 잘 써지는 사람도 있고, 해가 졌을 때 잘 써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창작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가 해야 할 예술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곳에서도, 그 어떤 사람들도 가르쳐 줄 수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예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자신이 작업했던 이전 작품을 통해서다. 작품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中>

결국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창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남들이 대신 겪어주는 것이 아니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앞선 선배들의 작품을 모작해본다거나 새로 나온 이론들을 연구해 본다거나,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해 본다거나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겠죠. 오늘 그린 하나의 선은 내일 그릴 또 다른 선의 시작입니다.

 

결국 영감이 언제 오는지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말이죠. 오늘 우리가 뮤즈의 도움 없이 오직 습관으로 해온 많은 일은 다음 작업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창작은 영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경험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은 작품을 만들게 되는 시간은 줄어들 것입니다.

 

백지

자, 이제 창작을 해봅시다. 2장에서 나온 도자기 A반의 이야기처럼 처음부터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작을 망설이고 계시는가요? 실수할까 두려워서? 당연한 일입니다. 위대한 작가들도 하얀 종이를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니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톰>을 만든 일본 만화의 거장 '데츠카 오사무'는 한 사람이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다양한 창작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동양의 순정 만화라는 장르조차도 그가 만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분야에 손을 댔는지 짐작하시겠죠? 이렇게 다작하는 작가는 창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가 유일하게 남긴 만화 교과서인 <만화 그리기 ABC>를 보면 그가 창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화는 낙서에서 시작된다. - 데츠카 오사무

데츠카 오사무가 백지를 만나면 즐겁게 낙서를 시작한다는 것이죠. 그는 처음부터 완벽한 것을 위해 만화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거나 재미있어서 그린 것이죠. 그러다 보니 그가 만든 만화도 한 가지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게 된 것입니다.

 

스티븐 킹의 작법서 <유혹하는 글쓰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문 시간을 떠올려 보면 보통 우리는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쓰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주제를 정해서 쓰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스티븐 킹만큼 많은 책을 쓴 사람은 없으므로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어차피 이야기는 자신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 생각하는 주제들이 무의식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초고를 수정하면서 자기가 주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부각하면 그것이 그 책의 주제가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스티븐 킹은 그냥 펜이 가는 대로 일단 쓰고 보는 겁니다. 데츠카 오사무의 낙서처럼 말이죠.

 

홍콩 누아르 중에는 오우삼에게 가려졌지만 두기봉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있습니다. 두기봉 감독의 프로필을 찾아보면 홍콩에서 총 80편에 가까운 영화를 감독하거나 제작한 사람이지만 본격적으로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근래에 들어서입니다. 지금 그는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기가 만든 80편 중 90%의 영화기가 쓰레기였다고. 쓰레기를 만들고, 만들고, 만들다 보니 어느 날 걸작 하나를 만들었다는 이야깁니다. 확실히 그의 대표작 <익사일>은 굉장히 참신한 액션이 독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많은 실패를 했는지 몰랐을 정도로 말입니다.

 

위의 세 명의 거장의 사례를 비춰보자면, 우리가 백지 원고를 만났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채워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졸작인지 걸작인지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감을 기다리지 말고, 아무거나 그냥 쓰세요. 지금 당장.

1990년에 현대 무용의 전설적인 거장인 마사 그레엄이 한국에 왔어요. 김포공항에 휠체어를 타고 이 90이 넘은 이 거장이 입국하는 장면을 봤는데 기자가 물어봤어요. 기자들은 보통 이제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하죠. "무용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의 무용학도들에게 한 말씀해주시죠?" 예, 거장인데. 이게 48년도에 찍은 사진인데 벌써 이때도 이미 거장이셨는데 90년에 그렇게 물어봤던 겁니다. 자. 그랬더니 이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JUST DO IT"

-- 김영하,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TED 강연 중에서

 

예술과 산업

은행가들이 모이면 예술을 논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을 논한다.

이번에는 산업으로써 창작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예술은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순수 미술을 떠올려 봅시다. 순수 미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시장화 되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동굴 화가들은 그림에 대한 값으로 사냥 음식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돈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죠. 그것은 때때로 자존감과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존감과 자유는 예술가의 상징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쉽게 억압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끌리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나타난 신화적인 이야기 - 즉 예술가들은 물질에 소유되지 않으며 유유 적적한 신선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반대로 그동안 예술가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을 뿐입니다.

 

예술과 돈은 떼일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술만을 위한 삶은 멋있어 보이나 때때로 비극적입니다. 돈에 얽매이지 않겠다거나, 혹은 대박을 터트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일 뿐. 어쨌거나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삶을 영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저는 예술가들이 이제는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해야 할 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예술은 공짜가 아니라는 걸 주장해야 합니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우리의 창작품은 보상받아야 합니다. 때때로 어떤 예술가들은 돈 앞에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싫어 계약서상의 권리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다음 작품을 위해서도, 또 앞으로 나타날 모든 예술가를 위해서도 이제는 따져야 할 때입니다.

 

잠시 한국의 예술 산업을 살펴봅시다.

 

창작가보단 학원 선생이, 만화가보단 대여점 주인이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요즘 작곡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가 부를 곡보다 아이돌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쩌면 화가가 되었을, 시인이 됐을 많은 사람이 게임 회사에 이력서를 집어넣습니다. 다른 산업에서는 정당한 보수를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죠. 작가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 독자들은 작가가 돈을 따진다고 비난합니다. 심하게는 그의 작품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예술가가 상업성에 물들었다고 비판하면서, 결국 상업적인 예술밖에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죠.

 

예술가가 자신이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는 자기 자기 검열이 계약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권리 주장을 해야 할 때 입을 막게 됩니다. 때때로 자본에 노예가 되기 싫어 한 행동으로 자본에 지배당하게 된 것도 보게 됩니다. 예술가는 돈의 속성을 이해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산업은 이제 컴퓨터와 로봇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인류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창작 산업은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생산 활동일지 모릅니다. 지금은 우리가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할 시대입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예술가의 운명이 인류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예술가가 자본가 앞에서 부당한 계약서를 찢어버린다면 그는 지금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으니 응원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죠.

 

거장들의 조언

창작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그 일은 오직 경험으로 배울 때 완성됩니다. 오늘 그린 하나의 선은 내일 그릴 또 다른 선의 시작입니다.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도움이 되는 명언들을 모았습니다. 뮤즈가 함께하시길!

"영감이 찾아오길 기다려선 안 된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야 한다." - 잭 런던
"아마추어들이 영감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프로들은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 스티븐 킹
"좋은 작가가 되는 건 3%는 재능이고, 97%는 인터넷 선을 뽑는 것이다." - 무명
"재능은 싸구려다. 중요한 건 훈련이다." - 앙드레 드뷔

"냉장고 앞에서 배가 고픈가 하고 물어야 한다면 배가 고픈 게 아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도 실제로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다." - 휴 프레이더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 테드 쿠저

"글쓰기 = 초고 - 10%" - 스티븐 킹
"쓴다는 것은 곧 고쳐 쓴다는 뜻이다." - 윌터 번스틴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후, 절반으로 줄이고, 제대로 다듬어라." – 찰스 다윈
"초안은 끔찍하다. 글 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밖에 없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대로 쓰려 말고, 무조건 써라." - 제임스 서버

"디즈니는 공장이었다. 1000명에 가까운 애니메이터들이 일한다. 그들은 위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들어가기를 마다치 않았다. 10명이 모이면 10개의 작품이 나와야 하고 100명이 모여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100개의 작품이 나와야 한다." - 프레드릭 벡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라. 당신보다 우수한 작가들은 많다." – 닐 게이먼

"소설을 써야겠다면 써라. 하지만 돈을 버는 건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해라. 보상은 쓰는 것 자체로부터 얻어라." - 펄 벅
"재미있을 것, 만들 만한 가치가 있을 것, 돈을 벌 것" -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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