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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창고/영화 이야기 히치콕의 <사이코>

by 서울나기 2019. 10. 16.

히치콕과의 대화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에 대해 공부하던 시기에 읽었던 '히치콕과의 대화'는 정말 귀중한 자료였습니다. 히치콕의 작품이 오락 영화 취급받던 시절에 그의 영화적 가치를 알아본 트뤼포도 대단하지만, 자신이 만든 모든 영화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는 히치콕을 보면 거장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네요. 개인적으로는 '이창'을 좋아하지만, 히치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작 '사이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만 결말의 반전은 뺐습니다.)

주인공의 도덕적 결함

주인공 마리온(쟈넷 리)은 불륜 상대가 빚으로 결혼을 미루자 범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녀는 사장이 입금하라고 맡긴 4만 달러를 들고 도망칩니다. 사적인 일로 돈을 훔쳐 도망치는 주인공을 설정해 감독은 시작부터 도덕적인 주인공을 좋아하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합니다.

 

영화적 장치

영화 초반은 마리온이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경찰은 매우 도덕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마리온이 무사히 도망치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히치콕은 그가 누구든 주인공이 되면 관객이 너무나도 쉽게 감정이입을 한다는 속성을 이용합니다.

타인의 삶

히치콕은 관객이 영화를 보는 속성인 '타인의 삶을 관찰하려는 흥미' 즉, 관객의 관음증을 영화적 장치로 이용하는 감독 중 하나 입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에서 히치콕은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훔쳐보는 것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던져주거나, 경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노먼이 지켜보는 벽 뒤의 상황에 대해 거부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를 훔쳐보는 이 인물을 우리는 스크린 뒤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속성의 욕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죄 플롯에 대한 배반

이후 날이 저물어 마리온은 한 낡은 모텔에 도착해 모텔의 주인인 노먼 베이츠(앤서니 퍼킨스)와 만나게 됩니다. 노먼은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호감 가는 인물이라 경찰(?)로 부터 무사히 도망친 그녀처럼 관객도 안심하게 됩니다.

 

"우린, 우리 각자가 만든 덫에 걸려 있어요."
- 노먼 베이츠

마리온은 노먼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은 뉘우칩니다. 그리고 이 위험한 도피를 끝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바로 속죄의 플롯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쁜 주인공이 등장하면 그가 어떻게 속죄하고 구원받게 되는가에 대해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주인공의 죽음

하지만 감독은 그 기대마처 배반합니다. 사이코에서 샤워 씬이 유명한 이유는 무섭게 찍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갑자기 죽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속죄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 이후에 말이죠.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치콕은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파괴해 버립니다. 그리고 영화는 아직 절반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화자의 분산

놀랍게도 화자 역활을 이어받는 건 노먼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범행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합니다. 히치콕은 다양한 장면에서 카메라 연출로 관객을 서늘하게 하는데 위의 장면은 시체를 차 트렁크에 넣고 늪에 빠뜨리는 장면입니다. 마치 '관객'도 함께 가라앉기를 바라는 듯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이어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여 화자는 더욱 분산됩니다. 전반부에서는 마리온이 경찰로부터 도망치기를 바랐지만 후반부에서는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객의 정서가 변하게 됩니다.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

히치콕은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의 개념을 탁자 밑의 폭탄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탁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터지면 관객들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서프라이즈) 반면 폭탄이 탁자 밑에 설치되는 것을 관객들이 미리 알았다면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몰라 긴장감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서스펜스)

서프라이즈는 공포영화에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때 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다음 상황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야 합니다. 서스펜스는 관객이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좋습니다. 반대로 주인공은 관객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르고 있어야 합니다. 관객과 주인공의 정보 불균형에 따른 긴장감이 서스펜스를 이루게 됩니다. 히치콕은 이 영화에서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를 능수능란하게 교차 시키며 보여줍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구성력을 가진 감독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밖에 이야기


  • 노먼 베이츠는 당시 떠오르던 하이틴 스타였다고 하니 그가 사이코인게 밝혀지는 장면에서 당시 관객들은 두배로 충격받았을 것 같네요.
  • 투자자가 없어 히치콕이 사비를 들여 만든 소품 영화라 싸고 효과 좋은 흑백 필름을 사용했습니다. 영화가 나올 당시에는 컬러 영화 시대였다고 하네요.
  • 히치콕은 영화의 플롯을 숨기기 위해 시사회 조차 하지 않고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 히치콕은 평생 아카데미 상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 책 '히치콕과의 대화'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88985367219
  • 다큐멘터리 '히치콕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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